블로그의 글쓰기/글읽기와 여성들의 글쓰기가 만나면, 혹은 페미니즘이 만나면 어떻게 될까. 요즘은 ‘블로그(blog) 세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블로그가 인기다. 올블로그, 블로그 코리아와 같은 블로그 커뮤니티가 새로운 매체로 부상하는 등 영향력이 날로 확장되는 추세다. 학술적인 관심 또한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 ‘블로그 세대’라는 말을 만들어내는 주요 언론들의 기사는 상당히 미심쩍은 구석이 많다. 기사들은 블로그가 인터넷 상에 글을 쓰는 매체라는 점에는 별 관심이 없다. 대신 블로그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세대’로 자신있게 묶어놓고, ‘블로그 세대’들이 ‘탈이념적’이고 ‘탈권위적’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이는 블로그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대체로 젊다는 점에 착안하여, ‘X세대’니 ‘N세대’니 하는 명명처럼 표피적인 외양에 치중한 수사학에 불과하다. 언론학계의 경우 전자미디어에 대한 일반론이 블로그에도 확장된 정도다. 대안미디어라는 낙관론 대 소비상품에 불과하다는 비관론의 대립. 이 학설들은 아직 블로거들의 실제 경험을 잘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1인 미디어의 특성과 여성의 글쓰기
블로그의 글쓰기/글읽기는 확실히 이전과는 다른 속성을 지니고 있다. 블로그는 일차적으로 1인 다이어리다. 그런데 비밀 일기장은 아니며 "남들에게 공개하는 사적인 글"이라는 이중적인 성격을 가진다. 때문에 지극히 내밀한 글쓰기가 될 수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타인을 의식하고 쓰기 때문에 타인의 영향력 또한 강하다는 교차적인 특징을 지니게 된다. 여기서 블로그의 대안적인 1인 미디어로서의 가능성이 탄생한다.
한편 1인 다이어리라는 속성은 여성 집단의 일반적인 글쓰기와 상통하는 면이 있다. 전통적으로 여성의 글쓰기는 일기나 편지와 같은 자전적인 글쓰기 방식이 큰 비중을 차지해 왔다. 시/소설과 같은 문학에서도 여성들의 글쓰기는 경험에 바탕을 두거나 육체의 특유한 감각에 의지하는 것 등이 특징으로 꼽힌다. 이 여성들의 글쓰기가 블로그와 만난다면 어떤 식으로 변화할 수 있을까? 최근 여성블로거들이 주축이 된 페미니즘 기반의 여성 메타 블로그가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블로그의 장점은 글쓰기가 홈페이지나 미니홈피보다 편하다는 것. 블로그 포스트 양식을 게시판에 차용한 만화웹진 블라블라(www.bla2.net)을 비롯, 여러 웹진을 운영한 경험이 있으며 직접 블로그를 설치해 사용하고 있는 김기린씨는 홈페이지에 비해 블로그가 글쓰기의 장벽이 낮으며 공간 구성의 자율성이 뛰어나다고 평한다.
김기린씨는 “블로그는 형식상 사진보다는 글을 올리는 기능이 강하며 개인적인 일기 대신, 특정 토픽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드나드는 사람들과 리플로 대화하는 경향이 강해진다”고 설명한다. 또한 타인의 블로그를 드나들면서 글쓰기에 대한 욕심을 가지기도 쉽다.
블로거들 상호 교류와 영향력 증대
블로그에 한번 빠져든 사람들은 헤어나기 어렵다고 호소한다. 그 이유는 다양한 정보들을 자기만의 관점으로 소화하고 흡수한 다량의 글들을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블로그에서는 필자들 상호간의 직간접적인 영향력이 증대한다. 글쓰기 자체가 사적인 기록/공적인 정보라는 이분법을 뛰어넘어 각 필자들의 개별성이 살아있으면서도 집단적인 작업으로서 진화하는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블로그 포스트들은 감상적인 자기 노출의 일기 혹은 최근에 인기 있는 연예가 소식이 차지하며 이런 포스트들은 블로그 커뮤니티에서도 인기가 꽤 높다. 이는 기존의 매체와 다르지 않은 풍경이다. 많은 포스트들은 기존의 주류적인 문화의 영향력 속에 여전히 포섭되어 있다.
김기린씨는 블로그의 미래에 대해 ‘집단 블로그’와 ‘위키위키’를 언급했다. 집단 블로그는 말 그대로 여러 명이 하나의 블로그를 사용하는 것이며, 위키위키는 아직 대중화되지 않은 시스템인데, 여러 명이 특정 토픽에 대해 글을 첨가하면서 정보가 축적되어 한 페이지가 튼실해지는 형식이다. 개개인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온라인 백과사전인 셈이다.
기린씨는 “물론 개개인에 따라 다르겠지만 전반적으로 개인적인 글쓰기에 질리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예견했다. 싸이월드 미니홈피가 생기면서 다들 글 쓰는 것 자체에 놀라워하고 흥미를 가졌다면, 지금은 블로그를 통해 다른 사람들의 글쓰기를 모방하면서 자기만의 글쓰기 양식을 발전시키고 있는 추세라는 것이다.
분명 글쓰기는 개인만의 고유한 개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종류의 작업이다. 그러나 현대 기술이 개인들 간의 교류와 정보 습득을 충분하게 지원하고 있는 상황인 만큼, 개인만의 작업보다는 집단 속에서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글을 쓰는 것이 더 효과를 발휘하게 될 것임을 예측할 수 있다.
여성 메타블로그 ‘sheblog' 프로젝트
현재까지 블로그 커뮤니티에 등록한 여성들의 수는 남성에 비해 절대적으로 낮다. 활발한 블로거들의 대부분이 남성이다. 하지만 블로그 커뮤니티에서 추천을 받는 글들에는 여성들이 쓴 ‘여성적인’ 포스트들도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자기 일상에 대한 감성을 풀어낸 글이 많다는 뜻이다. 이는 기존 매체에 비해 블로그가 여성들에게 장벽이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블로그는 홈페이지에 비해 그 사용이 매우 쉽기 때문에 실제적인 사용에 있어서는 성별차이가 거의 없다.
몇몇 여성 블로거들은 이 부분에 주목했다. 현재 여성들의 메타 블로그인 쉬블로그 ‘sheblog' 프로젝트가 준비 중이다. 아직 준비 단계이므로 어떤 기준으로 어떻게 사람들을 모을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완성되지 않았지만, 그녀들이 구상하는 것은 여성들이 제한 없이 자유롭게 글을 쓸 수 있으며 여성 친화적이고 여성주의적인 정보가 공유되는 공간이다. 기본적으로 이슈를 중심으로 한 트랙백 포럼이나 카테고리별 정보 분류와 같은 메뉴들을 구상할 수 있을 것이다.
이 프로젝트의 제안자 중의 한 명인 진보네트워크의 달군씨는 “진보넷(jinbo.net) 블로그에는 활동적인 여성 블로거들이 꽤 많다. 예를 들어 성매매 관련 논쟁이 불거졌을 때 많은 여성들이 적절한 의견을 표명하는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 더 고민을 하게 됐다”고 말한다. 여성주의자들의 의견이 블로그를 통해 공유되었을 때 기대할 수 있는 잠재적이고 긍정적인 가능성이 실현된, 작지만 중요한 예다. 달군씨는 “국내의 경우 언니네(unninet.net)의 ‘자기만의 방’이 선례”라고 평가한다. 여성주의자 혹은 여성주의에 관심이 있는 여성들과 남성들이 인터넷 상에서 네트워킹을 한다는 점 때문이다.
‘sheblog'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단비씨는 외국의 여성 블로그 커뮤니티들을 소개했다. 위민블로거 'womenblogger'(ringsaround.net/womenbloggers)는 여성들이 운영하는 블로그들을 모은 웹링(webring)이다. 개인 블로그는 운영자가 여성이어야 하며, 운영자가 복수인 블로그는 운영자의 51%가 여성이어야 가입 가능한 곳이다. 이곳은 운영 규칙을 자세하게 규정하고 있는데 예컨대 가입자는 명백히 눈에 띄는 포르노 이미지를 게시해서는 안되며 차별, 편견, 폭력을 조장해서는 안 된다.
페미니스트블로그 'feministblog'(Feministblogs.org)는 "스스로를 여성주의자, 여성해방론자, 우머니스트, 친페미니스트 남성으로 규정하는 블로거의 모임"이다. 이 곳은 여성주의자들의 목소리를 모으고 여성주의자 블로거들의 교류를 촉진하는 것이 목적이며 블로그를 통해 주류 미디어와는 다른 목소리를 만들어가고자 한다. 팀블로그의 느낌이 강한 곳이다. 빅시스터즈 ‘Blog Sisters'(blogsisters.blogspot.com)는 약 100여명의 여성 블로거들이 '자매'로 등록되어 있는 곳으로 남성 블로거들은 Blog Sisters에 링크는 할 수 있어도 회원으로서 글을 쓸 수는 없다.
대안미디어로서의 블로그 커뮤니케이션
블로그와 페미니즘의 만남은, 블로그가 가져온 집단으로서의 영향력이 강한 글쓰기와 손쉬운 네트워킹을 고려할 때 꽤 흥미로운 프로젝트임에는 틀림없다. 여성들이 공유하는 경험들이 포스트를 통해 병렬되면서 내는 시너지 효과는 꽤 클 것이다. 여성들이 필요로 하는 새로운 정보가 빠르게 유통될 수 있으며 당면한 페미니즘 이슈에 대한 논쟁과 토론이 쉽게 이루어질 수 있다.
여성들이 필요로 하는 정보는 주류 매체에서도 꽤 다루어지고 있지만 정치적으로 민감한 부분에 있어서는 여성의 입장이 배제된 채 다루어지기 쉬우며, 십대여성이나 노인여성, 여성노동자, 레즈비언과 같은 사회적인 소수자들과 관련된 정보는 여전히 부족하다. 그 외에 여성들 간의 직간접적인 교류가 늘어나는 것 역시 예측할 수 있다. 경험에 기반하는 여성들의 글이 블로그를 통해 공적인 의견을 표시하는 속성까지 띄게 되었을 때, 많은 여성들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갈 수 있다.
한편 여성 개인의 내밀한 부분이나 개별적인 상처를 드러내기에 의지하는 ‘여성적인’ 글쓰기는 사적인 경험인 동시에 그 개인만의 경험이 아닐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집단적인 경험이라고 해서 반드시 선험적인 사회적 가치를 가지지는 않는다. 집단적인 경험은 집단의 고정된 정체성에 안주하거나 집단을 방어하는 방향이 아니라 사회의 치부를 드러내고 한계를 지적할 때 효과를 발휘한다. 여성주의자들의 글쓰기 역시 마찬가지다.
블로그가 개인적인 감상보다는 독자를 의식하는, 토픽 위주의 공개적인 글쓰기를 유도하는 만큼 개별 필자들의 글쓰기 양식의 변화에 대한 의지 또한 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여성들의 블로그는 이제 시작 단계다. 그리고 이는 대안적인 미디어로서 블로그의 가능성을 점치는 장이 되기도 할 것이다.
출처:http://news.naver.com/news/read.php?mode=LSD&office_id=007&article_id=0000000756§ion_id=102&menu_id=102
'::트랙백'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에, 바톤 (1) | 2006/05/17 |
|---|---|
| 사랑에 관한 50문 50답 (9) | 2006/04/14 |
| 여성 메타 블로그가 뜬다 (0) | 2006/02/17 |
| "수능대박 수능대박!!" (9) | 2005/11/23 |
| 혼자서- 49문 50답♬ (0) | 2005/09/16 |
| 고치고 싶은 습관이나 버릇은? (0) | 2004/12/09 |

이올린에 북마크하기
이올린에 추천하기
Prev
Rss Fe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