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4/26 16:00

하왕조는 실재했는가

하왕조는 실재했는가
1) 이리두(二里頭)의 궁전터
 근년 중국고대사와 중국고고학의 세계에서 하나의 큰 문제점은 하왕조(夏王朝)는 실재했는가라는 토픽이다. 후에 서술하겠지만 중국의 각종 고전 속에는 역사상 최초의 왕조로서 하가 존재했다고 되어 있으며 이어 하가 은(殷)으로 교체되었다고 되어 있다. 뒤에 상세히 서술할 은왕조가 실재의 왕조라는 것은 고고학적으로 확인되었다. 그렇다면 은에 선행한 최초의 왕조라는 하는 과연 실재했는가.
 이 문제는 중국의 고고학자를 중심으로 다방면에서 연구, 토론되고 있어 현재로서는 일정한 견해를 보이고 있지 못하다. 여기에서는 이 문제를 고찰할 때 중심적인 과제의 하나인 하남성 언사현(偃師縣)의 이리두(二里頭)유적에 대해서 보자. 이곳은 하대(夏代)의 유적을 탐색할 목적으로 1959년 이래 현재까지 계속 발굴하고 있는 유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유적임이 점차 분명해졌다. 이 유적의 특징적 문화는 이리두문화라고하여 전기(1,2기)와 후기(3,4기)로 나뉘어지는 바, c14치로는 대략 기원전 1900년부터 기원전 1500년경에 상당한다. 더구나 이리두문화의 전기와 후기 사이에는 분명하게 문화단계로서의 큰 차이가 보인다. 나아가 이 문화가 이곳을 중심으로 하남성 서부의 황하유역과 산서성 남부의 분하(汾河)유역에 집중하고 있음도 밝혀졌다.
 근년 이 이리두유적의 중앙부에서 이리두후기에 속하는 거대한 건축터가 두곳 발견되었다. 하나는 동서 108m, 남북 100m를 약 2m두께의 판축(版築)으로 다진 터로, 주위는 장(牆;토벽)으로 둘러싸고 중앙 북쪽으로는 더욱 일단을 높힌 기단 위에 30m×40m 정도의 대규모 전당(殿堂)이 세워져 있었음이 밝혀졌다.
 또한 이곳으로부터 150,정도 떨어진 곳에 또 하나가 있었는데 발굴자에 의해 <이리두2호궁전>이라고 이름붙혀졌다. 사방 90m의 터 위에 회랑, 담, 대문을 세우고 안에는 32m×12m정도의 건조물을 갖고 있다. 이 건조물 북측에 하나의 대묘(大墓)가 있었던 것으로부터 발굴자가 <궁전>이라고 이름한 바, 혹은 종묘였을지도 모른다고 한다.


2)은의 왕성
 이들 건조물은 이제까지 많이 발견되었던 반지하식 거주지와는 완전히 다른 성격의 대형건조물로, 이미 이때 국가가 성립해 이곳이 그 권력자의 주거지였음이 분명하다. 이 두 대건조물은 모두 이리두 제3기에 속하며 c14치로는 기원전 1700년 전후이다. 더욱이 최근 이리두유적에서 동쪽으로 50킬로미터 떨어진 언사현에 아주 가까운 부근에서 낙하(洛河)를 따라 이 시기로는 놀랄 만한 큰 고대성터가 발견되었다. 동서 약 1200미터, 남북 약 1700미터로의 성의 담은 판축으로 쌓았는데 현존하는 성벽은 높이 1~2미터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아래부분의 폭이 18미터나 되기 때문에 본래는 높은 성벽으로 둘러싸였음에 확실하다. 동, 서벽에는 문이 각 3개, 북벽에는 하나가 확인되었고 또한 성안을 종횡으로 달리는 넓은 도로나 궁전의 기단(基壇)도 여러 곳 발견되고 있다.
 이러한 규모로 볼 때 이것이 왕성이었음은 틀림없지만 이는 하의 왕성이 아니고 은왕조의 창시자인 탕왕(湯王)이 두번째 천도했다고 하는 서박성(西박毫(아래가 모자가 아니라 택자)城)일 것이라고 하는 사람이 많다. 이곳은 고래로 시향(尸鄕)이라고 불려왔다. 예컨대 『한서(漢書)』지리지의 언사(偃師)조에는 반고(班固)가 자신의 주(注)로서 '시향은 은탕(殷湯)의 도(都)'라고 하는 등 문헌상의 기재와도 합치하는 것이 하나의 유력한 근거로 되어왔다. 또한 탕왕의 즉위는 문헌학적으로 대략 기원전 1700년경이라고 하기 때문에 C14치의 연대와도 잘 합치된다. 여전히 은족이 홍기한 지역을 산동방면에서 구하는 편이 유력하지만 역시 강한 반론도 있어 현재로서는 반드시 분명한 것은 아니다.

3) 하의 왕성을 찾아서
 이리두문화 후기(3,4기)가 은의 탕왕 시기에 상당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러나 일단 하왕조가 실재했다고 해도 현재 발견되고 있는 이리두전기 유적이 곧 하의 왕성유적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현재로서 이 시기의 유적이라고 할 수 있는 유적이 발견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래서 일부에서는 하의 왕성을 다른 곳에서 찾고자 하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그 하나가 최근 하남성 등봉현(登封縣) 왕성강(王城崗)에서 발굴된 두 개의 고성(古城)에 대한 견해이다. 이것은 그다지 잘 보존된 성벽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한 변이 100m가 채 못되는 성벽이 두 개가 접속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여기에서 출토된 유물에서 판단하면 이리두 제2기보다 이른 시기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c14치로는 기원전 2천년을 약간 상횡하고 있다. 오늘날 일부 학자들은 이를 하의 왕성이라고 보려한다. 그러나 이를 그대로 따르기는 어렵다. 예컨대 하대에 속한다고 해도 이를 왕성으로 보기는 어렵다. 즉 반파촌의 앙소기 취락규모와 비교해도 너무 협소하다.
 하왕조는 과연 존재했는가. 오늘날 이를 적극적으로 부정할 근거는 전혀 없다. 그러나 왕조= 국가의 존재를 고고학적으로 증명하려면 예컨대 왕성지, 왕묘 등이 발굴되고 그것이 문헌상의 기술과 합치하는 것이 먼저 요구된다. 현재 고고학2자들에 의해 결사적 탐색이 계속되고 있고 뜨거운 토론이 반복되고 있다. 하왕조의 실재가 증명되는 날은 그다지 먼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4)정주이리강(鄭州二里崗)문화
 은대 초의 탕(湯)왕성이라고 추정되는 도성지가 근년에 발견되었음은 이미 기술하였지만 해방후 얼마 안되어 중국고고학상 최대의 문제가 되어 논의를 불러일으킨 것은 하남성 정주에서 발굴된 성벽이었다. 이 성벽은 일부가 현대까지 사용되었는데 실은 은대에 축조된 것이고, 더구나 연대적으로는 후술할 안양(安陽)의 은허(殷墟)보다도 거슬러 올라간다고 추정되기 때문이다.
 이 성벽은 동벽, 남벽 각 1700m,서벽 1870m, 북벽 1690m 합계 7천m가 채 못되는 거대한 성벽으로, 그 기저부의 두께가 36m나 되며 판축을 붙여 굳힌 것이다. 이 성벽의 내부에 있는 목탄을 계측한 결과, C14치는 대략 기원전 1620년 전후이다. 대략 은대 중기에 해당한다. 성 밖 동남쪽 교외로 2리(華里) 떨어진 곳에 이리강(二里崗)이라 불리는 언덕이 있고 그 근방에서 대량의 토기가 출토된 문화층을 발굴할 수 있었다. 여기에서 발굴된 토기의 형상은 정주유적 전체에서 발견된 토기의 중심을 이루는 것으로, 현재로는 은대 중기를 이 유적으로 표준을 삼아 이리강기(期)라고 부르는 것이 일반적으로 되었다. 그러나 이리강기도 이리강하층 문화와 이리강상층 문화로 구분할 수 있으며 상당히 긴 기간에 걸친 것이 분명하며, 또 남관외(南關外)에는 이보다도 오래된 문화층이 있으며(南關外期), 낙달묘(洛達廟)외 여러 곳에서 이리두문화의 흔적도 발견되고 있다. 또한 역으로 이리강문화기보다 늦은 은대 후기의 유적, 유물도 발견되고 있으며(人民公園期), 이곳이 결코 이리강기뿐 아니라 전후 장기에 걸쳐 인간이 집주했던 곳임을 알 수 있다.
 성내에는 거대한 궁전지가 발굴되었고, 성외에서는 주동공방(鑄銅工房;두 군데), 제도(製陶)공방, 제골(製骨)공방도 발굴되었다. 이것이 은대 왕성지라는 것은 거의 의심할 여지가 없다(그러나 이곳에서 왕묘가 발견되지 않은 것은 안양 은허의 경우와 비교해 대단히 흥미를 끈다).
 『사기』본기에는 성탕(成湯)이 서박(西박)으로 천도하고서부터 10대째인 중정(仲丁) 때 이르러 오(제방변방 플러스 방)로 천도했다고 한다. 이 은중기의 정주성은 중정이 천도한 곳이라고 추정되고 있다(그러나 정주성을 은대 초기 언사성이라고 주장하는 연구자도 있다). 금일 정주성은 정주시의 시가지로 되어 있기 때문에 한정된 부분밖에 발굴할 수 없다. 그러나 이리강문화와 비교해 극히 넓은 범위에 분포했음을 알 수 있다. 북은 북경 근방, 남은 호북성 황피(黃陂)에서 강서성 청강(淸江)에 미치며, 서는 섬서성 화현(華縣), 동은 산송성 익도(益都)에 이르는 지역에서 유적이 발견되고 있어 이 시기의 은문화가 지역적으로 광대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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